필리핀에 지인들이 많으면, 여기저기서 병원비 도와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는다고들 합니다.
저는 지인들이 별로 없어서 잘은 모르지만 정말로 병원비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고, 젊어서 죽는 일도 많기는 한 것 같습니다.
몇년전에 필리핀 직원집을 몇번 갔는데, 그때만해도 그집이 가난하게 살 때였고, 대학 신입생인 어린 직원이 신기하게 일도 참 잘해서 갈때마다 그 어머님 아버님한테 용돈도 드리고 좋은 말도 많이 해드리고 그랬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더군요. 그때 죄송하게도 그나마 돌아가시기 전에 잘 해드릴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중에는 우연히 직원들 얘기하는데 귀를 쫑긋하다가, 한명의 조카가 미숙아로 태어나서 중환자실에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병원비 보태라고 만페소 주고, 나머지 병원비는 무이자로 빌려주겠다고 했는데 그럴 기회도 없이 며칠 뒤에 아기가 사망을 했습니다. 그때도 참 미안하게도, 다행히 며칠 전에라도 알아서 도움을 줄 기회가 있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좋은 사람이어서는 아니고, 직원들한테 잘해줘야 직원들도 나한테 잘해주겠거니 해서 그랬습니다.
언젠가는 클락 공항에서 택시를타고 집에 오는데, 택시기사가 바가지를 조금 씌우려고 해서 비싸다고 했더니 신생아가 중환자실에 있어서 약값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속으로 안믿었지만 따지지는 않고 택시비도 달라는 대로 줬습니다. 그런데 내릴때 정말로 중환자실에 있는 애기 사진을 보여주길래 섬찟 했었습니다. 만약에 거짓말하지 말라고 모욕을 줬다면 총맞았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요.
하여튼 필리핀에서 나에게 중요한 누가 아프다고 하면, 병원비가 필요하겠거니 하고 도움을 줍니다.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면 도와주지는 않지만, 그래도 돈이 필요해서 아프다고 거짓말하는 거라고는 생각을 안합니다. 그랬다가 나중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죄책감이 들것 같아서요.
참, 필리핀에서는 도움요청을 거절하려면 싫다고 하면 안되고 지금은 돈이 없어서 어렵지만 나중에 여유가 되면 도와주겠다고 거짓말을 해야 합니다. 마누라가 화장이 예쁘냐고 물어볼때처럼 이게 일종의 예의 인 듯 합니다. 도와주기 싫다고 하면 앙심을 품지만, 대신 나중에 도와준다고 공수표를 날리는 것도 그냥 잊어먹고 넘어갑니다.
직원들한테는 갑자기 가족이 입원하거나 큰 일이 생겨서 급전이 필요하면 엄한데 가서 비싼 사채 쓰지말고 꼭 저한테 먼저 얘기하라고 합니다. 그래도 그 찬스를 쓴 직원은 아직 한명밖에 없었습니다. 조카가 제왕절개로 태어나서 6만페소인가 들었는데, 일부는 주고 나머지는 빌려주고 월급에서 일년동안 까고 있습니다. 그 애기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