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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는 현 상황에 대한 궁금증 ㅜ.ㅜ(43)

Views : 5,482 2021-04-05 00:52
자유게시판 1275166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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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 답답한 나머지 주저리 주저리 하는거일뿐 절대 종교편향 적인 얘기 아님을 밝힙니다.

물에빠진 사람 지푸라기 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라고 할까요??

이글 읽으시고 오해는 없으시길 바랍니다.

코로나 로 전세계가 다 힘들어하고. 빨리 종결됬으면 하는 바램은 누구나 다 있는 바램이겠죠??

그 중에 당연 종교인들 도 포함되 있겠구요.

기도들 엄청 많이 할텐데.. 그 많은 기도를 들은 신들은 왜 아무런 반응이 없는건가요????

1..
원래 신은 없다..
그냥 기도는 마음의 위안일뿐 이고..
일부 악독 종교인들의 밥벌이 수단일 뿐이라서 그 많은 기도를 해도 효과가 없는건 당연하다.

2..
신은 우리가 모르는 계획이 있기에..그 많은 종결기도를 묵살하고 묵묵히 목표를 위해 가는중이다.

두가지 경우의 수 말고 다른게 또 있을까요??????????

평소에 기도빨 좀 잘 받는다고 하시는분들 뭔가 계시라도 받으신게 있으시면 공유 부탁 드립니다.
  본 글을 신고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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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걸렸던넘 [쪽지 보내기] 2021-04-05 01:38 No. 1275166754
늘 변함 없는 레파토리 정치얘기 종교얘기 그다음은 필리핀 까대기 ㅋㅋ 식상하네요. 주무세요
밍구밍구 [쪽지 보내기] 2021-04-05 01:40 No. 1275166755
@ 코로나걸렸던넘 님에게...
제 글 모니터링 하시나요?ㅎㅎㅎ

제글 어디에서 정치얘기를 했죠?? 필 까데기는 언제 했구요?????

이런 댓글 지양 합니다..
코로나걸렸던넘 [쪽지 보내기] 2021-04-05 01:42 No. 1275166758
@ 밍구밍구 님에게...
요점 없는 종교 얘기 하시잔아요 ㅋㅋ 그러고 제가 님한테 모라 한것도 아닌데 새벽에 열내시고 그러세요? 주무세요 전 이만 자러 갑니다^^
밍구밍구 [쪽지 보내기] 2021-04-05 01:43 No. 1275166759
@ 코로나걸렸던넘 님에게...
열낸거 아니구요.. 제글에 좀 편향적인 댓글을 쓰신거 같아서요.

Koo Das@구글-QI [쪽지 보내기] 2021-04-05 01:58 No. 1275166762
기도라 흑사병때 종교인들 모여서 기도하다 거기가 감염 매개체가 되어 더 죽었죠.
그래서 중세사회의 몰락을 가져왔구요
밍구밍구 [쪽지 보내기] 2021-04-05 02:00 No. 1275166763
@ Koo Das@구글-QI 님에게...
그냥 답답해서 끄적여본 글 입니다.ㅎㅎ 넘 깊게 생각하진 마시길~~ ^^*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5 04:36 No. 1275166788
I Know Who Holds Tomorrow (Ira Forest Stanphill)

I don't know about tomorrow
I just live from day to day
I don't borrow from its sunshine
For its skies may turn to gray
I don't worry o'er the future
For I know what Jesus said
And today I'll walk beside Him
For He knows what is ahead

Many things about tomorrow
I don't seem to understand
But I know who holds tomorrow
And I know who holds my hand

I don't know about tomorrow
It may bring me poverty
But the One who feeds the sparrow
Is the One who stands by me
And the path that is my portion
May be through the flame or flood
But His presence goes before me
And I'm covered with His blood

Many things about tomorrow
I don't seem to understand
But I know who holds tomorrow
And I know who holds my hand


내일에 대해서는 나는 모릅니다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지요
난 내일의 햇빛을 빌리지 않습니다
그 하늘이 잿빛으로 바뀌기도 하니까요
나는 미래에 대해 그다지 걱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 난 그분과 함께 걸을 것입니다
그분은 내 앞길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내일에 관해 많은 것들을
내가 알지 못하는듯 보이지만
나는 누가 내일을 주관하는지 알고
누가 내 손을 잡고 계신지 알고 있습니다

내일에 대해서 나는 알지 못합니다
내일이 나에게 가난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참새를 먹이시는 그분이
내 곁에 서계십니다
그리고 나의 몫이 되는 이 길
불이나 홍수를 통과한다 해도
그분의 임재가 내 앞에 가시고
그리고 나는 그분의 순혈로 덮여있기 때문입니다

내일에 관한 많은 것들을
내가 알지 못하는듯 보이지만
나는 누가 내일을 주관하는지 알고
누가 내 손을 잡고 계신지 알고 있습니다

아이라 스텐필(Ira Stanphill 1914-1993) 은 Singer, and Gospel song writer 였으며, 교회 목사이기도 했습니다.
1949년 함께 찬양 사역하던 아내 젤마가 시험에 빠지게 되고, 그 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이혼을 당하게 됩니다. 아이 양육권마저도 빼앗겼고, 졸지에 가정이 무너지는 아픔을 당하게 됩니다. 이 힘든 고난 중에도 스텐필 목사님은 주님께 엎드렸고 주님은 그와 함께 하셔서 고난을 이기게 하십니다. 이 간증이 만든 노래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삶이 힘들어서 괴로워하고 있을 때에 어느 날 꿈에 이 노래를 들었습니다. 꿈에서 깬 후 이 곡의 가사를 읽고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을 깨닫고 삶의 고통과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했습니다.)

"내일 일을 결코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일은 내일의 염려가 있을 것입니다. 그날의 괴로움은 그날로 충분합니다.”— 마태복음 6:34

www.youtube.com/watch?v=yj1yyLyPiBE
코로나걸렸던넘 [쪽지 보내기] 2021-04-05 10:02 No. 1275166874
@ Jehoshua 님에게...
알리사님오셨네요 ㅋㅋ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5 10:18 No. 1275166880
@ 코로나걸렸던넘 님에게...
I'm Jehoshua.
코로나걸렸던넘 [쪽지 보내기] 2021-04-05 11:45 No. 1275166960
@ Jehoshua 님에게...
No you are Alissa. I know you just don't want to admit it because that's your tendency. Does it make you feel better if you hide your identity? How many more new accounts are you creating? Another 100? hahaha
To frankly speaking, I and other people don't care who you really are because you are one of those pathetic psychopaths. Have a blessed day ahead of you. :)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5 12:01 No. 1275166974
@ 코로나걸렸던넘 님에게...

I'm Jehoshua.

" Have I not commanded you? Be strong and courageous. Do not be terrified; do not be discouraged, for the LORD your God will be with you wherever you go." (Joshua 1:9 )
Have a nice day.
코로나걸렸던넘 [쪽지 보내기] 2021-04-05 13:17 No. 1275167009
@ Jehoshua 님에게...
Okay Allissa. Hahaha whatever you say. What's the matter? Can't express not even one single sentence on your own? Just leaping to the Bible? Hahahahahahah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5 16:11 No. 1275167103
@ 코로나걸렸던넘 님에게...
I'm Jehoshua.
Because only the word of God is the truth.
코로나걸렸던넘 [쪽지 보내기] 2021-04-05 17:52 No. 1275167181
@ Jehoshua 님에게...
Cge lols
5632commander [쪽지 보내기] 2021-04-05 08:43 No. 1275166826
코로나도 신께서 주신 선물이니
코로나 걸려 보신분들은 신의 뜻을 잘 알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과연 신은 인간들에게 왜 코로나 라는 선물을 주신걸까요?
사라라락 [쪽지 보내기] 2021-04-05 08:45 No. 1275166828
종교에 있는분들은 이또한 주님이 주신 시련 극복하자 천국에 갈수있게 이렇게 생각하실듯..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5 10:03 No. 1275166876
코비드를 경험했습니다.

아이티에서는 코비드에 걸려도 감기처럼 가볍게 지나가지만, 저는 코비드의 모든 증상을 경험하고 극심한 고통을 경험하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생각하면서 천국 소망이 있음을 감사하게 되었고, 죽음 앞에서는 예수님밖에 없음을 알았습니다.

코비드를 경험하면서 그동안 주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했던 견고한 진이 사라지고, 견고한 진이 사라진 자리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영이 임했습니다.

3일의 고통을 경험하고, 다시 3일째 되는 날 모두 나아서 집으로 퇴원하게 되었지만 다시 열이 오르면서 죽음의 공포가 다가왔습니다. 기도와 찬양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기 위해 기도방으로 갔고, 온 힘을 다하여 찬양하고 감사를 드렸으며, 3시간 후에 열이 떨어졌고 다시는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코비드는 악한 영과의 싸움입니다.

저의 지난 삶은 주님께 불순종한 삶이었는데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면서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고통 가운데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고, 감사와 찬양을 올려드렸습니다.

찬양과 감사는 사단의 계략을 무너뜨리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욥기가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처럼, 저에게 코비드는 하나님과 가까이하게 되는 엄청난 축복이었습니다.

코비드에서 살아나온 지 며칠 되지 않아 굶주린 13명의 아이들을 돌보게 되었는데, 5명의 남자아이와 8명이 여자아이였습니다. 8명을 거두면서 ‘Girl's home’이 생겼습니다. 큰 센터를 운영할 기회도 주셨습니다...

(아이티 선교사, 전 UN 직원)
낙동강오리알 [쪽지 보내기] 2021-04-05 12:03 No. 1275166976
@ Jehoshua 님에게...
매년 수십억의 동물들이,사람의 먹는 즐거움 때문에,태어나서 죽을때까지,글쓴분이 경험하신 고통을 아무런 희망도 없이,경험하다 도살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웃긴 코메디가 있다면,동물들에게 이런 짓을 하다가 죽어서는 천국에 간다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하는데,죽으면 이 우리들이 만든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천국은 무슨..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5 12:19 No. 1275166979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창세기 9:3)
낙동강오리알 [쪽지 보내기] 2021-04-05 13:08 No. 1275167006
@ Jehoshua 님에게...
유튜브 찾아보시면요... 한석규의 '지랄하고 자빠졌네'만 계속 반복되는 1시간짜리,2시간짜리,10시간짜리도 있거든요. 이게 듣다보면 정신이 들기도 하더만요.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5 13:27 No. 1275167016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No thanks.
낙동강오리알 [쪽지 보내기] 2021-04-05 13:18 No. 1275167010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그래서 서양사상이라는게, 그럴듯 해 보이지만,진짜 알맹이는 빠져있어 위험할 수 있습니다.

불교만 해도,고통을 줄이는 방법,살생을 하지마라, 이 얼마나 단순하고 진실된 말입니까?

위대한 철학자라는 데카르트가 그랬죠, '나는 생각한다,고로 존재한다',
이 데카르트가 무슨 짓을 했냐하면 동물은 영혼이 없다고 정신승리를 한후,
이걸 증명한답시고,개들을 산채로 배를 가르며 지금 이 개가 고통스러워 하는 건, 마치 로봇처럼 흉내를 내는 거라고 주장합니다.그러면서 울부짓는 개를 보면서 키득키득 거린 걸로 유명하지요. 한두번 한것도 아니고 증명한답시고 몰려다니며 이 짓을 꽤나 많이 했던 모양입니다.


낙동강오리알 [쪽지 보내기] 2021-04-05 18:09 No. 1275167183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그리고,좀 심하게 믿는 기독교 신자들 조심해야 될 필요도 있습니다.

기독교 아닌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이분들 주위 사람들이 좀 마음에 안들다 싶으면 '마귀 들렸다'라고 믿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마귀를 퇴치해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조심해야 되요.

가톨릭은 이런게 전혀 없습니다.필리핀이 가톨릭인게 정말 다행이에요.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5 18:16 No. 1275167185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네. 새겨 듣겠습니다.

기독교인들한테는 분별력이 필요하지요. 거룩한 생활도 중요하고요.
낙동강오리알 [쪽지 보내기] 2021-04-05 19:24 No. 1275167214
@ Jehoshua 님에게...
내가,Jehoshua 님한테,상당히 어려운 부분이지만,한번 좋은 의도를 가지고 말해 보겠습니다.

기독교를 심하게 믿다보면,어김없이 나타나는 증상이 있습니다.
그건 영화 밀양에서 약국 아줌마가 보이던 것과 같은 것 인데요,눈에 보이는 모든 곳과,들리는 모든 것에 하느님의 자취를 느끼는 것 입니다.

길가다 사람을 우연히 만나도,우연히 돈을 잃어버려도,우연히 작은 사고를 당해도,어김없이 그 느낌이 뇌에서 발생(Invoke)되어,이 모든게 하느님의 뜻이고 뭐고 해서,심하면 감동의 눈물까지 흘리게 됩니다.

사실 이증상은,비단 종교에서만 나타나는게 아니고요, 선천적 조헌병으로 인한 망상이라는 현상으로도 나타나고요,drug 로인한 휴유증으로도 나타납니다.
또한 보통사람에게도 주로 불쾌한 느낌으로 살면서 한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일입니다.

가령,drug 휴유증으로 누군가 나를 쫒아다닌다는 망상은,하느님이 어디에도
깃들어 있다는 느낌과 정말 똑같다고 합니다.
다만 그 느낌이 감동이 아니라,불쾌감이고요,불쾌감이기 때문에 결국 극복도 가능한 점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느님,하느님만 생각하다 보면,이런 경지에 다다르고요,인터넷에서
이런 증상을 눈물겨워 이야기 하는 적지않는 기독교 선교자들을 보았습니다.

뭐 이런건 개인의 자유라고도 할수 있겠지만 말이죠, 하지만 우리 사람이
이런 정상적이 아닌 심리상태에서 죽을떄 까지 벗어나지 못한다면,제 생각에 이것은 비극입니다.

제가 전도연이 '그냥 햇빗이에요,아무 것도 없는데요' 라는 장면을 Jehoshua 님에게 다시한번 권해드립니다.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6 10:45 No. 1275167451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삽시다!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부활이 이상할 이유가 없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죽은 자의 부활을 믿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부활절의 진정한 관심은 예수님께서 정말 부활하셨느냐가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님을 지금 나도 만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 28:20에서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부활 신앙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지금도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고후 13: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저의 어머니는 제가 대학 4학년 때 돌아가셨습니다.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서 마지막 어머니를 뵈었을 때 산소호흡기를 쓰신 어머니께서 손을 꽉 잡으셨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유언이었습니다.
장례를 치르면서 나와 내 동생들 위하여 기도해 줄 어머니가 없어졌구나! 그것이 제일 슬펐습니다. 묘지에서 하관식 마치고 오는 날, 자꾸 뒤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묻고 온 그 자리가 생각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머니는 하나님 곁에서 나를 내려다 보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창 밖으로 하늘을 쳐다 보았습니다. 큰 위로가 마음에 임하였습니다.
‘어머니는 오히려 살아 계실 때보다 더 세세히 우리를 지켜 보고 계시고,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다’ 이것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든든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그것과 다릅니다. 저 천국에서 우리를 지켜 보시면 응원하시고 격려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와 함께 계시고 능력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심을 알지 못합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만나 꼬박 하루를 함께 동행하며 말씀을 나누었었는데도 그 분이 예수님이신줄 알아 보지 못하였습니다.

안타깝게도 이것이 오늘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겪고 있는 일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부활의 복음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속죄의 복음, 곧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은 것이 은혜의 전부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갈 2:20에서 놀라운 고백을 하였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의 부활에서 ‘주님과 함께 산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세례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롬 6:4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성경에서 세례의 의미는 하나됨입니다. 곧 세례란 예수님과 하나되었다는 징표로 주어지는 의식입니다. 세례받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자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참여하는 것은 참으로 귀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예수님의 생명은 부활의 삶, 생명의 삶, 능력의 삶, 예수님이 주님이신 삶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절의 진정한 관심은 예수님이 2,000년 전 죽었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을 막연하게 믿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 예수님을 지금 만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서도 여전히 죄의 종노릇하는 옛 사람으로 살아가는 교인들이 적지 않습니다. 죽을 때까지 성질과 죄된 습관을 하나 하나 죽여가야 한다는 엄청난 부담감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과연 나의 모든 죄성이 언제 다 죽을까, 과연 이 죄성이 다 죽을 때가 올까?’ 생각하며 절망합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이들도 대부분 이런 상황에 빠져 있습니다.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계속되는 마음의 평강을 가져다주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임재’ 뿐입니다.
우리가 죄에서 승리하는 삶을 사는 것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볼 때 되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부활하신 예수님과 개인적으로 교제할 때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부활의 주님과 친밀한 만남을 가질 수 있을까요?
십자가의 죽음에서 예수님과 하나되었음을 분명히 하고 사는 것입니다.
고후 4:10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도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활의 능력으로 임하는 열쇠입니다.

답답하고 절망스런 형편에 있는 분이 있습니까? 어두움의 권세, 사망의 권세로 눌려 있는 분이 있습니까? 여러분이 할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음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 예수님과 함께 나는 죽었습니다”
그러면 반드시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영혼이 사는 길이요, 가정이 사는 길입니다.
우리 인생에 예수님께서 부활의 능력으로 임재하여 영광을 드러내실 수 있는 길입니다.
낙동강오리알 [쪽지 보내기] 2021-04-06 13:01 No. 1275167612
@ Jehoshua 님에게...

아침에 일어나서 눈뜨자마자 하느님을 느끼고,물을 마셔도,걸어도 하느님을 느낀다면,이런 심리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심리상태가 아니라는 것이며,이건 마치 심리적 감옥에 갖힌 것과 같다고 봅니다.
이런 심리적 감옥에 평생 죽을때 까지 못 벗어난다면,그건 비극적 이라는 것이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게 아니라,하느님이라는 아이디어로 항상 채색해서 본다면,이건 고통일 수도 있고요.
그리고 믿고 안믿고를 떠나서,눈을 떠도,물을 마셔도,걸어도 자꾸 특정 느낌(하느님,예수와 관련된)이 머리속에 떠 오른다면,뭔가 잘못되었다는 것 입니다.

전도연이 '그냥 햇빗이에요,아무 것도 없는데요' 라는 장면을 보시면,

있는걸 그대로 볼수 있는 그 자유로움,그 순간 아무것에도 구속받지 않는 그 무엇,진짜 하나님이 있다면 사람에게 이런걸 원하지 않을까요?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6 15:32 No. 1275167703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6 14:52 No. 1275167679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
낙동강오리알 [쪽지 보내기] 2021-04-06 19:02 No. 1275167837
@ Jehoshua 님에게...
마지막으로,심리적 감옥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방법은..

내가 여러 댓글로 이런 저런 말을 했지만,이런건 거의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은,스스로 나오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주위에서 아무리 뭐라해도,사실 거의 무용지물이나 다름 없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내부적인 동기에 의한 스스로의 심경변화,이런 심경변화로 인해 마음이 조금이나마 자유로와지며,이 조그만 자유로부터 그 철통같은 심리적 감옥에 점점
틈이 생기며,탈출할 수 있는 조그만 계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한번,전도연이 '그냥 햇빗이에요,아무 것도 없는데요' 라는 장면을 보시며 마음의 조그마한 자유라도 느껴보십시요.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7 01:12 No. 1275168000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자꾸 영화 밀양을 언급하셔서..

저는 햇빛이 비칠때마다 하나님을 생각할만큼 믿음이 깊지 않습니다. 요즘은 낮에 거실에 햇빛이 많이 들어오면 더운 열기가 싫어서 커튼을 확 쳐버리네요.

갈증이 나면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서 시원하다고 생각하면서 마실 뿐이고, 걸을때는 주로 음악을 듣거나 별 생각 없습니다.

지난 주에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의미가 있는 성금요일과 부활주일이 있어서 필고에 간단하게 이야기를 올린것 뿐입니다. 필고 회원분들중에 기독교분들도 계신다고 들어서요.

밍구밍구 님 글에는 하나님과 관련된 저의 경험을 적은 것 뿐입니다.

님이 언급하신 기독교를 심하게 믿는 것(무슨 뜻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과 심리적 감옥에 갇혀 지낸다는 것은 저에겐 해당되지 않습니다.

저는 기도와 전도,성경 말씀 읽는 것에 열심이지 않고, 예수님 생각하면 심리적으로 행복해지거든요, ㅎㅎㅎ..
낙동강오리알 [쪽지 보내기] 2021-04-07 02:02 No. 1275168014
@ Jehoshua 님에게...
다행 이십니다.사상이나 이념,종교 같은 관념에 대해서는 '반신반의'가 최고입니다.'반의'는 세포로 따지자면 세포막에 해당되고요,내부와 외부 사이의 경계 입니다.

이 경계가 약하면 외부에 취약할 수도 있고요,너무 강하면 강한데로 문제가 생길 것 같습니다.

물론 전적으로 나의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7 02:12 No. 1275168018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저는 기독교는 종교 이상의 100% 삶의 진리라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사명은 Jehoshua (여호수아) 인데 성경 속 여호수아처럼 전쟁터에서 승리, 정복하기 위해서 성장해가는 과정중입니다. 아직 많이 미숙하지요. 물론 싸움의 승패는 하나님이 주관하시지요. 구약 성경 여호수아를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해드립니다. 그러면 저를 좀 이해하실 겁니다. 관심없으시면 마시구요. ㅎㅎㅎ..
낙동강오리알 [쪽지 보내기] 2021-04-07 02:36 No. 1275168021
@ Jehoshua 님에게...
좀 주관적인 말이지만,

넓은길과 좁은길이 있습니다.

넒은 길에서는 글쓰신 분과 같이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해도 정신적 밸런스에 큰 문제가
생기지 않고요,

좁은 길에서는 약간의 정신적 타락(종교에의지 포함)만 해도,하루 자고 일어나면 마음이 또라이(?)상태가 되는 비극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가 넓은길을 걷고 있다고 하면,언제가 좁은길을 걸어야 할 때도 있을까요?

아주 좁은 길에서는 약간의 정신적 실수로도 마음이 타들어가고,더불어 몸도 같이 타들어 갈수 있지 않을까요?

혹시 '소돔과 고모라' 에서 사람들이 좁은 길을 걷게된 건 아닌지..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7 02:47 No. 1275168022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그래서 기독교인들에게는 칭의와 함께 죽을때까지 연단과 훈련이 있는것 아닐까요? 앞으로 잘 나아가다가 넘어지기도하고, 다시 일어서고.. 그러면서 성화가 되어가고..

그런데 아직도 안 주무시고 깨어있으시네요? ㅎㅎ.. 저는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난거라서..

자.. 저는 오늘은 이만 물러날께요. 성경책 읽고 싶어서요.

나중에 기회되면 또 chatting 해요.

It was nice chatting with you.

Have a good night. ^_^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6 23:12 No. 1275167951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God knows me better than you know me.

It was nice chatting with you.

Have a good night.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6 19:20 No. 1275167847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11장 28~30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3~14절)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5 20:00 No. 1275167230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예수님은 우리 안에 계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지만 실제로는 귀한 손님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하라는대로 하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우리의 자아는 죽지않고 살아서 주인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는데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하십니다.



죽지 않은 자아!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는 것이 성경은 죄라고 합니다.

열심을 다해 충성, 봉사하는데 옛자아가 죽지 않아서,

'죽어야지' 하지만 안 죽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도 싸움이 일어납니다.

믿음이 좋다고 하는데, 그로 인해 기독교가 더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자아의 죽음!

세례를 받은 우리는 이미 죽은 것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로마서 6:6)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20)



사람은 욕심, 정욕, 교만, 자랑, 등 자기 종교에 빠져 있습니다.

옛사람은 육신의 종이므로 육신이 원하는대로 합니다.



'죽었다'는 것은 육신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마귀의 유혹은 죽을 때까지 우리 안에서 계속됩니다.

그러나, 사탄의 유혹에 굴복하여 죄의 종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종으로 사는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더이상은 죄의 종이 아닌 예수님의 종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의 종노릇 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은

죄와의 싸움이 끝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싸움의 시작이다.

우리 안에 죄는 죽지않고 여전히 남아있다.

단지 죄의 지위가 변한 것 뿐이다. 죄와 우리와의 관계가 달라진 것이다.

죄의 종이 아니라 예수님의 종이 된 것이다.'

- 싱클레어 퍼거슨/ 성도의 삶



내가 나를 죽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오직 복음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예수님과 연합하여 내가 죽었으므로,

예수님을 살아계신 주로 모시고, 내가 죽었음을 고백하면

그때부터 주님께서 내 속에서 일하십니다.

'죽겠습니다'가 아니라 '죽었습니다'로 고백할 때,

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 드러납니다.



내가 죽었을 때 새 생명을 얻게 됩니다.

내가 죽지 않았다면 새생명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로마서 6:11)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삶의 핵심은 죽는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에 있습니다.

유익한 줄 알았던 돈, 명예, 성공 등을 다 배설물 처럼 여기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옛자아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고,

예수님과 함께 새 생명으로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증인이 되는 삶을 삽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들이 있으면 세상이 달라집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Jehoshua [쪽지 보내기] 2021-04-05 19:49 No. 1275167223
@ 낙동강오리알 님에게...

영화 ‘밀양’은 어떻게 기독교를 오해했나?
가해자의 기독교, 피해자의 기독교
한 줄 평: 유심론과 유물론을 기독교로 오해한 영화

서울에서 남편을 잃은 신애(전도연)는 사랑하는 남편과의 추억이 깃든 밀양으로 아들과 함께 이사온다. 이사 오면서 만난 카센터 사장 종찬(송강호)이 신애에게 연민을 품고 접근해 오지만 신애는 무감각하기만 하다.
어느 날 신애는 아들마저 잃고 만다. 모든 것을 잃고 절망에 빠진 나머지 교회에 의지하지만 교회의 이중성, 특히 무엇보다 아들의 생명을 앗아간 범인이 개종 후 보이는 의연한 태도에 기독교라는 종교 자체에 대한 회의로 결론을 맺는다.
이 영화의 메시지 축은 직접적으로 기독교를 겨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 최고의 피상적 가치로 알려진 '용서'와 그에 관한 비판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특히 그 피상성(superficiality)은 지금까지 교회에서 강조해 온 가해자 중심의 가치보다는 피해자 중심의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기독교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영화이다.
이 글은 신애라는 여인이 체험한 기독교(인)의 이중성을 옹호하는 글이 아니라, 신애의 눈을 빌리고 있는 이 영화가 어떻게 기독교를 오해했는지 주된 플롯 순으로 요약한 글이다.

#1. 그녀는 극한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만난 후 용서를 실천한다. 하나님을 만났다고는 하지만 자식 잃은 사람으로서 그리 할 수 없는 것인데도, 그녀는 아들 죽인 살인자를 찾아간다. 용서하러.
#2.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전해주러 왔어요." "나도 전에는 몰랐어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도 안 믿었어요." "안 보이니까 안 믿었죠." "우리 준이 때문에 하나님 사랑을 알고 새 생명을 얻었어요." "...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하나님 사랑을 전하러 왔어요."
#3. 그녀가 쏟아내는 저 꽃말들은 일종의 준비되고 학습된 '대사'이다. 게다가 자기 아들의 살인자에게 그 꽃말들과 함께 전하기 위해 들꽃까지 꺾어 온 것을 볼 때, 그녀는 반드시 둘 중 하나다. 정말로 그녀가 하나님을 만나 극락에 출입하고 있거나, 아니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용서란 기독교 내적으로도 그렇게 쉬운 일로 꼽지 않는다.)
#4. 그녀가 감행하는 용서의 목적은 자신의 새로운 삶을 위한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그 비현실적인 용서의 언어들과 거기에 더한 들꽃은 그녀가 지닌 철저한 자기애를 반영한다. 우리도 자칫 그런 것처럼. 그 자기애적 이상이 그 대사들을 창조하고 학습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한마디로 나르시시스트다. 우리 모두처럼.
#5. 그녀의 자기애적 새 삶에 대한 몽환은 그것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영화 전반부에서 포착된다.
#6. "왜 밀양에 왔는가"라는 물음에, 남편이 당한 불의의 사고를 설명하고는 "죽은 남편의 꿈이었던 밀양으로의 귀향을 통해 새 삶을 일구러 왔노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일찍부터 그 피상성을 눈치챘어야 했다. 왜냐하면, 그녀의 남편은 그녀에게 그런 이상을 제공할 만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외도와 불륜으로 도리어 그녀의 이상을 파괴한 인물이었다.
#7. 이것이 그녀가 지니고 있는 꿈의 실체인 동시에 그가 구현해내고자 했던 용서의 피상성이다.
#8. 영화의 초반부에 밀양 토박이(송강호)에게 '밀양'의 뜻 말(은밀한 볕)을 일러주면서 "멋있지 않나요~" 하며 나른한 느낌을 만끽하는 표정은 그야말로 나르시시즘의 전형인 것이다.
#9. 그러므로 이후에 벌어지는 그녀의 반신론적 실천들은 살인자의 뻔뻔스런 속죄와 구원에 대한 응답이라기보다는, 그녀가 구축하려던 이상적 새 삶의 초석이 되고 있는 그 용서를 선점당해 빼앗긴데 대한 분노와 보복이다.
#10. 따라서 기독교 안팎에서 비판하고 자성했던 저 살인자가 보여준 '용서받은 자로서 초연한 자태'가 딱히 무엇이라고 규정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불안정한 그녀의 눈에 비친 기독교의 일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단, 나르시시스트였던 그녀가 기독교로 귀의하려다가 아예 '유물론'과 교섭을 이루어 급선회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살인자가 보여준 확신에 찬 용서는 차라리 '유심론'에 가깝다 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갇힌 육체를 통해서 상상하기 가장 쉬운 천국은 육체를 완벽하게 배제한 유심론적 구원 밖에 달리 없지 않았겠는가. 그렇다고 그 유심론적 구원이 기독교인 것은 아니다.
#11. 반면 그 모든 물질적 실체를 부인하는 저 살인자의 유심론적 용서에 맞서기 위해 내밀 수 있는 카드란, 유물론적 용서 밖에 달리 없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유물론에 천착하는 맥락이기도 하다. 그래서 유독 이 영화의 여주인공 신애는 구토를 많이 한다. 정신이 아닌 물질이라는 것이다.
#12. 그녀는 마지막을 거울로 마치려 한다. 미용실에서 그 살인자의 딸에게 머리칼을 맡겼다가 이내 거부하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자기 혼자만의 거울 앞에 다시 앉는다. 그리고는 자기 스스로 머리칼을 자른다. 나르시시스트들의 종착지인 것이다.
#13. 이 영화의 감독이 칸에 가서 "우리가 살아야 할 의미는 하늘이 아니라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에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인터뷰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인지 영화가 (빛을 담은) 창공의 하늘로 시작해서 (빛을 담은) 땅바닥의 더러운 개숫물로 마치는 구도에 그토록 많은 해석들이 있었던 것같다.
#14. 그의 말대로 하늘이 아닌 땅에 역점을 두고 만들어졌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영화가 지니고 있는 해석학적 기도(企圖)는 시종일관 나르시시즘에 더 종사한다. 주인공을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고통의 궁지에 몰린 절대 약자로 산출해내는 것도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 자기애 형식이며, 하나님의 장로를 유혹하여 배 위에 올려놓고는 그 하늘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고는 "보고 있느냐"며 나직이 그렇지만 비장하게 쏘아붙이는 프레임은 영락없이 To Die For(1995)에 나오는 니콜 키드먼의 나르시시즘이다.
#15. 나르시스트를 주인공으로 상정하는 바람에, 이 영화가 꾀하려 했던 종교적 경계가 무너지고 만 것이다. 세상엔 실제로 기독교와 반기독교가 있는 것이 아니다. 윗물(창공)과 아랫물(개숫물), 그리고 그 사이에 빛들, 또 그리고 여러 나르시시스트들이 있을 따름이다.
#16. 왜냐하면 인간은 누구나 신이 없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단지 거울을 가지고서 조절을 하고 있을 뿐.
따라서 이 영화에서 철창 감옥에 갇힌 죄수가 믿는 기독교는 기독교라기보다는 유심론(唯心論)이라 할 수 있고, 이 영화가 강조하는 기독교는 기독교라기보다는 유물론(唯物論)이라 할 수 있다.

에필로그

피해자의 용서를 방임하는 가해자의 기독교는 기독교라기보다는 유심론이다.
가해자의 용서를 반복적으로 후벼파는 피해자의 기독교는 기독교라기보다는 유물론이다.

papago [쪽지 보내기] 2021-04-05 10:28 No. 1275166902
1.기도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노력하면서 기도해야 여호와께서 응답하심
(노력없이 기도한다고 다 되면 난 오늘부터 100일 로또 1등당첨 금식기도 할거에요, 적어도 본인이 코로나를 종식 인류를 구하기 위하여 노력이라도 하고 기도하시길...)

2.이건 그럴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인간은 신의 계획을 알수 없으나 신께 계시를 받는 사람도 있겠지요
밍구밍구 [쪽지 보내기] 2021-04-06 00:06 No. 1275167313
@ papago 님에게...
노력하고 기도 안해도 성공하고 풍요로운 사람 행복한 사람이 없다면?? 님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죠

스스로 노력하고 .. 기도하면 응답하신다??

그럼

스스로 노력하고 .. 기도 안하면??? 응답 못받아서.. 행복하고 부자로 사는건가요?ㅎㅎㅎ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하기 나름 입니다.

열씸히 살고.. 석가 나 성모 에게 기도하며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무엇으로 설명하실껀가요?ㅎㅎ

즉 .. 제 생각에는 .. 둘다면 좋겠지만..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기도보다는 열씸히 를 선택할꺼 같은데.. 제 생각이 틀린가요???
papago [쪽지 보내기] 2021-04-06 11:20 No. 1275167538
@ 밍구밍구 님에게...
제 말의 포인트는 종교를 떠나 아무 노력도 없이 바라기만 하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 입니다.
밍구밍구 [쪽지 보내기] 2021-04-07 02:04 No. 1275168015
@ papago 님에게...
그쵸.. 그러니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선.. 승리하기 위해선.. 기도보다는 노력이 우선이라는게 합리적인 생각인거죠?????????? 저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일부의 종교이들은 노력보다는 기도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뉘앙스로 얘기를 하더군요.. 그부분은 저는 동의하기 힘들다는 뜻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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