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경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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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6 21:06
베트남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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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은 인적 자원, 물적 자원이 풍부한 나라임에도 아시아에서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다.
1975년 베트남의 통일을 통해 사회주의 공화국을 수립한 베트남은 정치적 통합에 이어 경제적 통합을 달성하려는 목적에서 사회주의 공업화를 추진하고 사회주의의 물질적, 기술적 토대를 구축하여 소규모 생산에서 대규모 생산 체제를 구축하려 하였다. 또한 농업과 경공업을 동시에 개발하는 동시에 중공업 개발을 우선시하였다.
하지만 베트남의 경제 성과는 대체적으로 부진하였고 식량부족과 인플레이션 높은 실업률과 낮은 국민소득을 특징으로 하는 전형적인 저개발국의 양상을 띄고 있었다. 베트남은 낙후된 기술, 투자 부족, 관료적 비효율성뿐만 아니라 조급한 사회주의 경제 건설에 따른 부작용을 안고 있었다.
집단화 체제는 정치, 경제적 상황과 사회심리학적 고려가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어 남베트남 국민들의 반대에 부딫혀 실패했고 농산물 할당 제도도 농민들의 반발로 인해 농업 생산성의 저하를 초래한 가운데 식량생산도 증대되지 못해 애초 목표의 8%에 훨씬 못미쳐 저조한 양에 머물고 만다.
이러한 저조한 식량 생산은 메콩강 삼각주에 있었던 자연재해와 남부 베트남의 반발에서 기인하였으며 부족한 식량 생산은 공업 부문에 투자될 재원을 식량구매에 사용하게 됨으로써 공업 발달에도 영향을 미쳤다.
1979년 시작된 베트남의 개혁은 베트남 국민들의 불만과 기대 상승의 요구에 부응하고 경제 위기를 타파하고자 하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혁, 개방과 생산 계약제의 실시, 농산물의 자유 판매 허용에 따라 농업 부문은 상대적인 성공을 거뒀지만 공업에서는 농업 부문 만큼의 실적을 가져오지 못했다. 농업도 지속적인 생산 증가를 보였지만 여전히 자급자족이 이뤄지지 못해 매년 북베트남에서는 약 300만 명의 농민이 식량부족을 겪어야 했다.
베트남은 1986년 제6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 도이 머이 정책을 발표한 후 12월 채택한 뒤 적극적인 대외개방정책을 추진했다. 외자법을 제정하여 해외 자본 유치를 위한 조치를 추진하고 아시아 주변국 및 미국 등 서방선진국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했다.
베트남 도이머이 개혁은 베트남의 경제를 중공업 위주에서 농업, 경공업 위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또한 정부의 개입을 축소하고 민간부문을 장려하고자 했다.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일당체제를 유지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시장자본주의로의 확대를 추진하고자 했던 것이다. 도이 머이 정책은 과거 빈곤했던 경제를 안정시키고 베트남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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